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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

from Art/• Writings 2008/07/04 18:01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여관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자 배가 고팠고 예전에 단골이었던 아주머니네 식당에서 떡국으로 해결하며 여기저기 둘러봤는데, 누렇게 때탄 벽지며 습한공기가 예전 그대로였다.
이 식당을 찾는 이유는 오로지 아주머니가 좋아서이다. 마음씨 좋은 충청도 분이시고 무척 순수하신 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찾아뵙지 못한 사이, 벽에는 잔잔한 변화가 생겼다. 온통 신문에서 오린 시들로 도배가...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편' 시리즈로 100일동안 오려붙이신듯 했다.
우연히 옥토씨가 앉은 정면에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가 있었고 그 바로 옆에 무려 한글자짜리 제목으로 옥토씨의 이목을 집중시킨 시가 있었으니, 그 시의 지은이는 문인수, 제목은 '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를 읽고 있자니 도저히 떡국을 떠넘길수가 없었다.
시 하단에 써있던 해설을 소개한다. 먼저 시를 감상하고 해설을 본뒤, 다시 시를 음미해 보시라.
해방둥이 문인수(62) 시인은 마흔이 넘어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쓰인 시인데, 바야흐로 문인수 시인의 대표시가 되었다. 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 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 하실까봐 아들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 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 이 '쉬'는 단음절인데 그 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 그것도 쉬이(쉽게) 누시라는 말이겠고, 아버지가 힘겹게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 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 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 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땅에 붙들어 매려 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땅으로부터마저 풀려 한다. 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드리듯' 아버지를 안고, 안긴 아버지는 온몸을 더 작게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 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욱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쉬!'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환기시킨다. 이제 아들의 쉬- 소리도, 툭 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 이렇게 조용히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시가 뭘까'라는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 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 이 시가 그러하지 않는가. (정끝별·시인)
오오~ 쥑인다. 껄껄껄~

피곤한 하루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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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슴뛰는삶 2008/07/04 21: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시 한편 덕분에 잘 감상했습니다.
    시를 쓰려면 삶에 대한 통찰이나 관력력이 좋아야하죠.
    참 어려운 장르라 매번 생각이 나네요.

    떡국 참 맛나 보입니다.
    떡국을 좋아하거든요.
    근데 여름은 떡국 하는 집이 많이 없서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 Sleepy 2008/07/05 11:05  address  modify / delete

      시가 참 오묘하죠. 어쩔땐 쉬워보이고 어쩔땐 어려워보이고.. 제가 시를 잘 접하지 않아서였는지 몰라도 보통 시 하면 생각나는게 운율에 맞춰 절제된 단어조합으로 복잡한 생각들을 담아내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쉬'는 편안하게 읽어내려가는 서술식이고 또 편한 소재로도 재밌는 구도를 형성해 그 안에 깊은 강정을 담아내는 걸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떡국은.. 좋은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셔서 그런지 엄청 맛있었습니다^^ 가끔 사발묵도 사먹곤 하는데 완전 시골맛이에요. 같이 나오는 숭늉도 좋고.. 요즘은 이런 음식 먹을데가 별로 없네요;

  2. mepay 2008/07/06 18: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까스는 쫌 어떠셨나요~^^

  3. 호박 2008/07/07 17:3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갠적으로 시인을 참 존경합니다^^
    기나긴 문장을 단 한줄로 또는 한단어로 표현해 낸다는건 정말 존경스럽지요~
    호박도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글을 쓰고싶습니다.
    그런 블로깅을 즐기고 싶습니다. <<< 괜히 심각(--^) ㅋㅋ

    날씨가 넘 더워여.. 그래도 떡국보니 군침이.. 쥘쥘쥘~^^;

    • Sleepy 2008/07/08 19:25  address  modify / delete

      날씨때문에 옥토는 죽겠어요. 머리는 어지럽고 쉽게 짜증나고... 매년 더워지고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요?ㅠㅠ 본조비의 'in these arms'라는 노래에 "Like a poet needs the pain~♬"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시인이 겪는 고통에 더위도 포함되는 걸까요?(뭐어?-_-)

  4. bluenlive 2008/07/07 22:3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옥토님 글도 글이지만 라는 시)

    인생의 경륜과 함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시군요.

    • Sleepy 2008/07/08 19:26  address  modify / delete

      쉬라는 시 정말 좋져?ㅎㅎ 안기고 안은 부자의 마음을 잘 담아낸것 같아요. 짱이가 나중에 커서 블루행님 안고있는 모습을 조심스레 상상해 봅니다??(뭉클해요.. 아~ 눈물좀..)